신세경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신세경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정세연
제목: 세월의 물결
오늘을 위해 버텨온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살아오면서 지나친 수많은 시간들.
그 시간속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난 나무 하나가 있었다.
나무는 대지의 지평선 아래로는 엄청난 뿌리를 내렸고 그와 비례하여 하늘높이 솟은 나뭇가지를 얻었다.
세연은 가끔 그렇게 오랜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나무 밑에서 등을 기댄 채 잠을 자는 걸 선호했다.
나무의 크기는 너무 커서, 세연이 나무를 끌어안아도 다 안지 못할 정도였다. 장정 네 다섯은 되어야 나무를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오늘은-.”
세연은 굳이 이곳에서 일기를 쓰는 걸 좋아했다. 불안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이 나무만큼은 유일하게 자신에게 휴식을 권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연은 글을 쓰는 걸 좋아했지만 집에 박혀 있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와 테니스를 치는 것도 즐겼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 세연이 학업을 위해 한동안 서울로 상경해야했다.
“나무야. 잘 지내고 있어. 다시 돌아올 게“
세연은 자신에게 항상 쉼을 주었던 나무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가 흔들렸을 뿐인데, 마치 세연에게 잘 다녀오라고, 안녕하라고 인사를 건네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 잘 다녀올 게!”
사람들이 고시를 위해 모이는 고시촌이 몇 군데 있었다. 세연은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그들과 같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고시촌이 아닌 다른 곳에 방을 얻었다.
그러나 그곳보다 고시촌이 그래도 적은 돈으로 살기 좋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닫게 됐다.
“아. 이번 시험도 낙방인 것 같은데?”
세연은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법고시가 곧 폐지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사법고시를 지켜야 한다며 거리로 나선 고시생들이 있었다.
세연은 우선은 공부를 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수많은 시험들은 세연과 같은 신분의 사람들에겐 사다리였는데, 이제는 그런 것마저 폐지된다고 하니까 기분이 우울했다.
세연은 그런 기분을 글로 썼다. 나무에 기대 쉴 수 없으니 나무로 만든 책에(다행이도 그 나무는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는 세연이었다.
“어렵다. 세상은, 참”
세연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한 것도 어느새 2년이 지났는데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합격소식을 들려오고 있었다. 세연은 이제 그 모임이 부담스러워졌다.
세연은 숨을 고르기 위해 광화문으로 갔다. 이곳에 있는 서점에서 책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책을 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라는 책이 있었다. 책을 펼쳐보니 아홉 명의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적어놓은 글이었다.
“글..”
세연의 마음속엔 늘 ‘글’, ‘책’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고시 준비를 열심히 하는 만큼 그 갈증은 높아져 갔다. 그런 세연에게 들어온 책은 참으로 신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의 압박과 같았다.
“글을 써서 먹고 살수나 있으려나”
세연은 자신이 아는 친구들과 자신의 상상을 더해 글을 써서 가장 가까운 공모전에 글을 내보기로 했다.
막상 마음먹을 때는 일필휘지로 한 번에 써내려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막힘이 있었다.
“아..”
세연 스스로의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에선 막힘이 없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때는 이렇게 써도 되나? 이런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글 속에 담으려는 친구에게 연락을 하는 세연이었다.
그는 세연의 연락을 반가워하고 곧 만나기로 했다. 여러 친구들에게 다시 연락을 하는 세연이었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면 더 좋은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만난 친구는 자신이 요즘 하는 일이 매주 길거리에 나가서 집회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요즘은 매주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며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매주? 안 힘들어?”
“세상이 바뀌어야 하니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 바꿈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던 세연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저 바뀌는 세상속에서 얼른 적응해서 살아남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세연이었다. 문득 사법고시 철폐를 막기 위해 나간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지금 만난 친구와 같은 거리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었다.
세연은 바뀌면 어쩔 수 없지, 빨리 바뀐 세상에 적응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뀔 가?”
세상이 바뀌는 방법은 유능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했던 세연이었다.
“응 바뀌지. 그나저나 세연이 너는 요즘 뭐하고 있어?”
가벼운 질문이었을 텐데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졌을까? 매서운 화살촉이 느닷없이 세연의 심장에 꽂혀 박혀버린 것 같았다.
“나는 요즘”
사법고시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글 써, 이런 말이 쉽게 안 나왔다.
“요즘? 너 그러고 보니 글을 계속 써? 참 잘 썼는데”
“어..? 어?”
이 친구한테 글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세연은 기억을 헤매어 본다. 자신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나? 잘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은 세연이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세연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심연의 이야기처럼, 내가 심연을 바라볼 때 심연도 자신을 바라본다는 말처럼 세연이 세상을 보고 있을 때는 세상도 세연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그래서 공모전도 나가보라고 했잖아”
세연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의 글에 대해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문득 이 친구 혼자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도 자신의 글을 본적이 있을까 궁금했다.
어릴 때 글을 부모님에게 보여줬을 때,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이런 글을 써. 하고 혼만 났던 기억이 유일하게 세연이 쓴 글을 타인에게 보여줬던 기억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글을 보여주지 않았던 세연이었는데, 막상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공모전..?”
“응. 내가 너한테 노트한 거 빌렸을 때 그게 잘못 빌려줘서 너 소설노트였잖아. 필기 노트가 아니라. 그런데 읽어보니까 너무 재밌어가지고”
친구의 구체적인 진술로 인해서 기억이 되살아나는 세연이었다. 기억의 조각들이 마치 되감기를 하는 것처럼 세연에게 날아왔다.
“아, 응. 그치”
“나는 너가 나중에 작가 할 줄 알았어, 근데 사법고시 준비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의사는 되기 싫었고, 다른 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부모님의 등쌀을 피해서 고시 생활을 하는 게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했던 세연이었다.
“작가..”
“지금이라도 글 써볼 생각 없어?”
친구의 느닷없는 권유에 세연은 웃음을 지었다. 세연의 미소를 바라본 친구가 새하얀 세연의 미소를 보고 중력처럼 빠져들었다.
“와, 아릅답다”
“어? 뭐가?”
세연이 친구의 말을 듣고 뒤에 뭔가 있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평범한 카페일 뿐이었다.
“작가 하기엔 페이스가 좀 아깝기도 하고, 연예인? 모델? 이런 쪽이 더 어울리나?”
“뭐가. 예쁘긴 네가 더 예쁘지. 우리 학교 공식 여신은 너였잖아”
“그건 뭐, 인정. 끼리끼리 논다고 우리 페이스가 좀 알아줬지?”
세연의 친구 지영은 엉뚱하게도 세연에게 고백하는 편지를 받아 본적 있었다.
마찬가지로 세연은 지영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전달해달라고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두 사람이었는데,
“넌 안 힘들어? 거리로 계속 나가는 거?”
“힘들지, 힘들어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세상이 바뀌어야 하니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묶은 떼를 벗겨내듯 지난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분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걸 먹고 자랐던 친구사이였다.
그러나 어느 중간의 지점부터는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 건 성인이 되고 난 후 직후는 아니었다.
대학시절만 해도 서로는 자주 만났다. 세연이 이렇게 가족을 떠나 고시촌에 들어오게 된 것도 대학 시절의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때 기숙사에 들어간 세연은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됐을 때 불안했었다. 그러나 가족의 간섭이 사라진 세계가 꽤나 낭만적이고 여유로웠다.
비록 기숙사 사감의 감시와 눈초리는 있었지만 가족들의 시선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세연은 다른 가족들도 이러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가족이 싫다라거나 이런 느낌보다는 남자는 어쩌고, 여자는 어쩌고, 그리고 첫째는 이렇다, 둘째는 저렇다 이런 전통에 대한 강요되는 부분이 심했다. 그나마 세연은 막내였는데 두 오빠와 세 언니는 지금의 세연의 나이가 됐을 때 다 큰 처녀가 뭐하냐,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 결혼할 생각이나 해라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래서 언니들의 적극 지원으로 대학교를 나올 수 있었던 세연이었다. 가장 아버지의 눈초리를 피하는 것도 검사가 되겠다는 이야기였다. 공안 검사였던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자식들은 숨기지 않았지만 세연만큼은 아버지의 편이 되어 줄 때가 많았다.
남매들도, 모두 반기를 드는 것보단 세연이라도 아버지 편에 있어주는 게 마음이 편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이 바뀔까?”
세연은 한 번도 세상이 친구 지영이 여는 집회와 같은 방법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세연에게 지영은 이미 한 번 바꿔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4.19 대혁명에 대해서 갑자기 일장연설을 하는 지영이었다.
“응..”
하지만 세연은 당시 그 집회를 통해서 대통령이 하야를 한 게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미국에서 대통령에게 압박을 넣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하야를 했던 것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대통령은 미국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실제로 한미 관계가 좋지 못했다. 전국에서 집회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지만 세상이 바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제 전국의 대학생들이 집결할 거야. 작전명 서울의 봄!”
“서울의 봄? 지영이 너 아직 대학생이야?”
삐죽 입을 내민 지영이었다. 꽤 깜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연은 이런 모습을 다른 이성이 봤으면 사랑에 빠졌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인 자신이 봤는데도 이렇게 귀여울 정도였으니까.
“아직 졸업을 못했다.”
세연도 따지고 보면 이제 졸업한지 2년이 겨우 넘어가는 정도였다.
“그 집회에서 뭐 하려고?”
“당연히 우리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거지!”
그냥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그렇게 그날 밤이 온 지도 모르고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이었다.
헤어진 후 세연은 지영과의 대화를 노트에 적었다.
글에 쓸지 말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세연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만나 인터뷰 겸 수다를 떠는 세연이었다.
그러면서 지영이 말한 날짜가 곧 다가오는 걸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걸까?
세상이 바뀌기를?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정부의 수혜자 가족인 세연이었다.
바뀌는 걸 원하는 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이 밝았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세연은 결국 지영이 있을 장소인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세연은 다른 루트를 찾아 서울역 거리를 내다보는 건물 위로 올라갔다.
수만의 사람들이 외치고 있었다.
서울 역 거리 한복판이었다.
적어도 10만 이상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지영아..”
다른 친구들 보다 유독 기억에 남았던 지영이와의 대화였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고, 또 찬란했기 때문이었다.
왠지 저들을 이끄는 자가 지영이가 아닐 까 생각했다.
통제되고 있었지만 무리들에 들어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는 세연이었다.
지영이를 만나기 위해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세연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서울의 봄’이라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세연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물결에 대한 기록을 위해 펜을 들기 시작했다.
바뀌지 않더라도 바꾸기 위해 파도처럼 몰아쳤던 물결에 대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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