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정하의 출연을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진현규
제목: 비가 오고
“미안”
현규의 오랜 버릇이 또 튀어나왔다. 미안하다는 사람 앞에 더 화를 내면 괜히 나쁜 사람만 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잘못은 현규가 했는데 현규의 미안이라는 말에 아무 말도 이어가지 못한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우산은 없었다.
“정말로 미안하긴 한 거야? 미안하다고 해결될 문제냐고!”
미안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현규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을 뿐이니까.
이미 미안하다는 말 때문에 결국 소예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현규는 지금 소예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잡을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헤어지면 정말로 헤어질 것 같은데”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을 쏟아낸 현규였다. 어이없는 말에 뒤돌아보는 소예였다. 지금 현규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나 하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
“아니 이대로 싸운 채로 헤어지기 싫다고”
“화를 풀어 될 거 아니야”
“정말 미안해”
소예와 현규가 싸우게 된 이유는 현규의 질투 때문이었다. 오늘 다른 친구에게 소예가 고백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자 현규는 마음이 착잡했고 소예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소예는 자신에게 그런 얘기를 절대로 하지 않을 생각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게 됐다. 그런 얘기를 듣자 소예는 장난으로 나 이렇게 멋진 여자야 고백도 받고 그러면서 자신감 뿜뿜인 모습을 보였는데 현규는 ‘너 남자친구 있잖아. 왜 그런데 남자친구 있다는 말을 안 한거야?’ 라는 말을 했다.
먼저 연애 사실을 굳이 학교 친구들에게 밝히지 말자고 한 건 현규였다. 소예는 밝히든 말든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 여자였다. 오히려 현규가 주변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성격이었는데 먼저 제안한 건 현규였는데 막상 소예가 남자친구가 있는 티를 안내니 속상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이렇게 고백을 받아 보는 게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네 번 째였다. 한번도 소예한테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 한번은 고백에 실패한 당사자로부터, 한 번은 고백할 거니까 너랑 소예랑 친해 보이니까 도와달라는 이야기까지도 들었던 현규였다. 그때는 소예가 자신의 여자친구도 아니었으니까 상관없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
그러다 싸움이 이렇게 크게 번졌다. 소예는 처음엔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면 이럴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집착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컸다.
“아무래도 우리 관계 생각 좀 해봐야겠어”
“안 돼. 미안해 소예야. 내가 미안해”
현규는 소예가 자신을 떠날까봐 덜컥 겁이 났다. 눈물이 흘러나왔고 그런 현규를 보자 소예도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눈물을 닦아주면서 지금까지 현규가 보였던 모습 중에 가장 멋없다고 눈물 닦으라고 했다. 소예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현규에게는 자신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려서 겁이 났다.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헤어짐이 이렇게 준비도 없이 찾아오는 걸까? 이 마음을 소예가 달래 줬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소예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날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던 현규는 더 큰 무리수를 두게 되었고 결국 소예와 결별하고 말았다. 밤 늦게까지 소예와 헤어진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현규였다.
다음날 소예는 혹시나 현규 설마 미치지 않고 서야 설마 하는 마음으로 헤어진 장소로 왔다. 비가 오고 있는 중에도 우산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놀란 소예는 현규에게 뛰어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헷갈리는 물방울들이 스르륵 현규의 얼굴에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예야,,”
“야.. 너 정말..”
그렇게 소예와 현규는 바보 같은 현규의 모습으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현규의 집착은 심해져 갔다. 스스로 자중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소예도 현규를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 들었다.
“나를 진짜 사랑하는 거면 놓아줘”
그렇게 정말로 마지막이 되어버린 인사, 가만히 있어도 오지 않았고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걸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는 현규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소예 하나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하던 현규였다. 정말로 세상을 잃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현규도 1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소예를 잊어갔다.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소예였는데, 잊혀져 갔다. 잊혀진 채로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왔다. 소예를 떠올리지 않는 보통의 날들이 왔다.
현규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다. 어느덧 계절이 한 번씩 그렇게 열 번을 지나갔다. 처음 사랑을 말했던 자리, 그리고 영원한 일별을 고했던 자리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도 이제 가슴에 요동이 없었다.
흔적만 남은 흉터처럼 더 이상은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억이 사라져 버린 건 아니었지만 이제 지난 사랑이 아프진 않았다. 그리움이라는 건 이럴 때도 쓸 수 있는 말인건가, 오히려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인 건가 생각하게 된 현규였다.
그렇게 소예를 완전히 잊어 갈 때 다른 여자들과 대화를 하고 술을 마시고 단 둘이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가고 여행도 갔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소예 이외에 손을 잡은 사람도 입을 맞춘 적도 없는 현규였다.
분명히 이제는 소예는 지나갔는데 다른 사람을 섣부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게 아니라 다가가지 못하는 현규였다. 어쩌면 소예가 아니었으면 현규는 아예 여자에 대한 경험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소예의 적극적인 구애 덕분에 서로의 시간을 침범할 수 있었다. 가끔 현규에게 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있었으나 소예만큼 적극적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현규는 아직까지 혼자였다. 그런 현규에게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소예를 모르는 친구의 추천이었다.
소예였다.
“어때? 예쁘지?”
“어..? 예쁘네. 남자친구 있을 거 같은데?”
“없어. 최근에 헤어졌대”
“최근에?”
아마 소개팅을 한다고 하면 소예가 거절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현규였지만 궁금했다. 소예가 어떤 반응을 할지, 그래서 친구한테 전 여친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소개팅을 한다고 한다.
떨리는 마음이라기보다는 그냥 궁금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현규는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터디도 나가고 교육도 받는데 이번에 한국대에서 서울시와 연합해 최첨단 아카데미를 꾸렸다.
현규도 장래를 위해서 이곳에 등록하는데 시험을 치는데 이상하게 뒷모습부터 낯설지 않은 느낌의 인상을 받는다. 그 사람이 괜히 궁금했다. 정말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앞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도 복도에서 본 잠깐의 뒷모습에 이상하게 끌렸다.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른 게 없는데도 말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과제를 위해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 등록된 사람들 리스트를 살피다가 어제 보았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민백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육생이었다.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보고 떨리는 마음을 느끼는 현규였다.
‘뭐지, 이런 적은 처음인데’
뒷모습을 본 것은 만난 적이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평소에 만난 적이 없는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있었어도 이렇게 톡의 프로필만 보고 사랑에 빠진 느낌을 받는 건 처음인 현규였다.
현규는 틈만 나면 백진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꽤 여러 장의 프로필 사진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적어놓은 글귀 마저도 자신과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바라던 완벽한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에 설렘을 느끼는 현규였다.
그때 소예와의 소개팅의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현규는 하지 않으려 했지만 소예와 다시 잘되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 마음과 머리에는 소예가 아닌 백진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대화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현규의 마음은 백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한테 소예가 소개팅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소예가 알아서 거절할 줄 알았는데 허락했다고? 알고 봤더니 블라인드 소개팅처럼 소예한테는 나가는 사람이 현규인 걸 비밀인 채였다.
일부러 안 밝힌 건 아니고 친구는 현규와 소예가 예전 사귀던 사이인 것도 몰랐고 소예는 미리 남자의 스펙을 따지는 스타일은 아니기도 했고 약간 소예의 친구와 현규의 친구가 무작정 추진하는 모양세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현규는 남자고, 예쁜 여자들에게 끌리는 면이 있고 소예는 충분히 예쁘기에 예쁜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팅 할래? 물어봤던 것이었다. 소예한테는 어떻게 전달이 됐는지 현규로서는 알 수 없었다. 친구가 전하길 소예는 아직 현규의 정보를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현규는 처음에는 자신이 소개팅을 한다고 해도, 소예가 정보를 알고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니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머릿속에는 소예와 백진이 자신을 가지기 위해서 싸우는 상상까지도 하게 된다.
“곤란하네”
상상이었지만 나름 기분은 좋았다. 상상이 끝날 때의 허탈함과 허무함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명은 헤어진 지 10년이 넘은 여자친구였고, 한 명은 아직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한 여자라는 게 슬픈 사실일 뿐이었다.
그렇게 4주간의 교육도 끝나가고 마지막 날이 왔다. 매일 그녀를 몰래 훔쳐봤던 규현이었지만 섣부르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규현의 존재자체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지막 날 다 같이 모이자는 교육생들의 말에 사람들이 뒤풀이를 하기 위해서 모였다. 그녀도 뒤풀이로 가는 모양이었다. 현규는 재빠르게 그녀의 주변으로 가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역시나 그녀는 인기가 많았고 다른 남자들이 서둘러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와 멀어진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술만 마시던 현규였다. 뒤풀이가 끝나고 그녀는 2차로 가는 길에서 이만 집에 가보아야 겠다고 말했다. 그때 다른 남자애들도 모두 나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야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현규도 집으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현규는 2차로 향하기로 했다. 2차에 도착했는데 빈 옆자리에 그녀, 백진이 앉았다. 현규는 놀랐다.
“어, 가는 거 아니었어요?”
“어, 저 가는 거 알았어요?”
“아, 다들 간다고 했을 때, 봐서 가는 줄 알았죠”
“가다가, 돌아왔어요. 더 마시고 싶더라고요 오늘은”
“아, 그래요?”
현규뿐만 아니라 2차 자리에 앉아 있던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생각보다 말을 잘했다. 항상 멀리 있었기에 몰랐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그녀를 보기전부터 반해 있던 현규는 더욱 더 그녀에게 끌렸다. 그녀는 마치 중력과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끌릴 수밖에 없는 그런 중력과 같은 그녀였다.
뒤풀이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는데 비가 내렸다.
오래전에 비가 내릴 때 서로 우산이 없어서 현규의 겉옷으로 뛰어가던 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앞으로 며칠 뒤면 그런 소예를 다시 만나게 되는 현규였다.
그리고 지금은 백진이 옆에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무슨 장화신은 고양이가 하늘을 보는 느낌으로 너무 귀엽다는 인상을 받는 현규였다.
“비가 오네요..”
“그러게요, 어떡하지. 이거라도 같이 쓰고 갈래요?”
자신의 겉옷을 같이 쓰자는 백진이었다. 보통은 이런 경우에 혼자 쓰고 가지 않나, 아무런 사이도 아닌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싶은 현규였다. 망설이는 사이에 백진이 자신의 겉옷을 크게 들어올려 규진에게 세웠다.
“하나 둘 셋 하면 뛰어요!”
문득 ‘하나둘셋 하면 달려!’라고 말하던 잊혀졌던 소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현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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