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혜인의 연기를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캐릭터
이름: 정혜성
제목: 궁의 거울
“닮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얼굴 뿐만 아니었다. 얇은 팔과 다리까지도 모두 이렇게 닮아 있다니? 혹시나 한 어머니를 두고 태어난 건 아닐 까 싶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쌍둥이는 아닌 두 사람이었다.
“정말 닮으셨습니다.”
두 아이의 보모도 놀란 모습이었다. 이렇게 닮은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가, 혹시나 싶어서 생일을 물었는데, 태어난 해와 날짜는 모두 달랐다.
“다행인지..”
그때 더 신분이 높아 보였던 그녀가 말했다.
“너, 혼례를 빨리 올리고 싶다고 했지?”
어느새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한 사람은 이 나라의 공주였고, 한 사람은 이 나라의 양반 가의 규수였다.
“혼례..”
공주는 지금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했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궁궐을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의 거울이 형상화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혜성을 발견했다.
“나는 혼례를 못해.”
“어? 왜?”
혜성은 더 어린 시절에 세손비의 후보가 되었다. 간택단자를 내었지만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간택에 대한 후보의 혼인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최종 후보까지 오른 인물은 결혼하기 힘들었다.
“뭐, 정말?”
인혜군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오라버니와 혼인할 뻔 했다니. 인혜공주는 현재 임금의 손녀로, 세자의 장녀였다.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공주가 될 인물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
혜성은 자신과 닮은 아이가 놀라니, 그 표정을 따라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인혜군주는 혜성에게 자신이 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궁에서 왔다고? 공주님?”
지금의 임금의 나이가 몇이데, 공주라면 더 큰 어른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공주는 아니고 나중엔 공주가 될 인물이라고 설명하는 인혜군주였다.
“너 공부를 덜했구나? 아니면?”
혜성은 억울해하며 인혜군주에게 자신의 상황을 말했다. 세손비를 노리는 집안에서 혜성이 유력해지자 아버지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했다.
“어찌 그런!”
인혜공주는 그런 말을 듣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궁으로 돌아가 제대로 잡아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인혜공주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이미 세손비가 된 세손비 영씨도 인혜공주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세손은 임금과 세자의 총애를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몇 해 후면 이제 성인식을 치를 나이가 되었다.
“아, 내가 해결해준다고 했는데”
인혜군주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한 걸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먹을 거라도 많이 가져다주기 위해서 먹을 걸 잔뜩 챙겨 혜성을 만나러 왔다.
“이게 뭐야?”
양반이지만, 넓은 집에는 노비 한 명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거야?”
“노비들은 다른 집에 다 팔았다고 들었어”
“뭐? 그건 금지됐잖아?”
“어? 그. 그래?”
혜성은 인혜군주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게 어명을 어긴 건지도 몰랐고, 하필 들켜도 왕의 손녀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이후 어떤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 까봐 겁이 난 것이었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네가 혼나면 내가 혼나는 것 같으니까. 이번엔 특별히 봐줄 게! 대신!”
인혜군주는 대신 자신인 척해주라는 조건을 걸었다. 혜성은 그 말을 듣고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인혜군주는 얌전한 혜성과 달리 말괄량이 성격이라서 궁중 행사에 참여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때만 자신인 척해달라는 것이었다.
“군주인 척해달라고?”
“응. 행사때만 부탁할 게”
아니면 노비매매를 실행한 건 할아버지에게 일러버리겠다는 인혜군주의 협박 때문에 혜성은 겁이 나서라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궁중행사가 매일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전에 혜성은 궁중의 예법을 인혜로부터 배웠다.
“이분이 세손이자, 나의 오라버니야”
약 7년인가 전에 자신의 남펴이 됐을 수도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초상화로 보게 되는 혜성이었다. 마음이 뭔가 이상했다.
“세손이시구나”
“안 돼. 세손이시구나 이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거 알지?”
“어..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됩니까 아기씨”
“세손저하라고 불러야지. 너는 그렇게만 외우면 돼. 개인적으로 만날 일은 없으니까. 행사 때만 보는 거니까?”
만약 자신이 세손의 부인이 되었다면 장차 세자비, 그리고 이 나라의 중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감회가 새로워진 혜성이었다.
지금은 그저 몰락한 양반의 규수일 뿐이었지만, 세상이 참 새옹지마처럼 느껴졌다. 그때 난데없이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비록 양반의 집이었으나 집안을 지탱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하셨다.
군주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고, 넓은 집에 잠깐 홀로 남게 된 혜성은 이렇게 다시 궁궐에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혜성아, 왜 나와 있니?”
노비도 한 명 없는 넓은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 하나가 없었다. 팔려버린 노비들이 자애로웠던 주인을 떠올리며 가끔 집안일을 해주고 갔다.
지금 다르게 노비의 주인이 된 양반댁에서도 이 집안의 처지를 알고 있기에 모르는 척 하는 일이었다.
혜성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고생하셨습니다.”
일부러 잃어버렸던 군중 예법을 다시 되찾게 될지 몰랐다. 최종 간택이 되면 바로 궁궐 생활을 해야 하니 울면서 배웠던 예법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써먹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혜성을 바라보며, 안아주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혜성아, 네가 고생이 많다. 너와 혼인을 하고 싶은 도련님이 나타나셨다.”
“네? 혼인이여?”
궁중과 사돈이 될 뻔한 가문은 대체로 다른 사돈을 얻지 못했다. 특히 최종 간택까지 간 인물들은 임금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문제로 인해 남편을 찾기가 하늘의 별 찾기보다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금지인 것은 아니었는데, 비록 간택이 끝나기 전까지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결혼이 금지인 것은 맞으나 끝나고 난 후는 자유로웠다.
“혼인이요?”
그동안 혼례를 치를 나이가 되었어도 혜성과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혼인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듣고 보니 울고불고 난리가 난 혜성이었다.
자신보다 두 배는 나이가 많은 인물이었다.
“어머니.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혜성은 자신 때문에 가문이 몰락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집안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마치 이제는 노비마저 다 팔아버렸으니. 남은 딸 마저 팔아버리겠다는 것처럼 보여졌다.
“혜성아. 네 남편이 될 사람은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그동안 과거를 본다고 혼례를 미루다가 이제야 찾을 때. 딱 너를.”
“그래도 나이차이가 이렇게 된 건, 제 나이 때 결혼을 했으면. 저 만한 아이가 생겼을 수도 있는 사람인거잖아”
혜성은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혜성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귀양살이를 가 있는 아버지에게도 전해졌다.
곧 아버지의 귀양살이가 끝났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혜성과 혼인을 앞둔 가문에서 힘을 썼다는 소문이었다.
진실은 인혜군주의 힘이었다. 아버지인 세자에게 혹시라도 지난 과거에 누명을 씐 사람이 없나 조사를 하는 게 아버지의 치세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조언으로 세자가 형부에 진상조사를 명했다.
그러다 혜성의 아버지가 누명이었다는 상소문들이 발견되었고, 귀양이 끝나게 되었다. 곧 아버지는 한양으로 돌아왔다. 가문의 집안 살이를 보고 무너진 가문을 보게 되자 눈물을 흘렸다.
그런 모습을 본 혜성은 결혼을 반대하는 걸 포기하게 됐다.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궁중행사의 날짜가 잡혔다고 자신인 척해달라는 인혜군주의 말이 있었다. 혜성은 알겠다고 말했다. 군주와 몰래 저잣거리에서 만나 옷을 갈아입는 혜성이었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도 됩니까?”
“안 돼지. 그러나 궁중행사가 얼마나 지루한데. 정말 싫어. 심지어 거기서 부마를 뽑겠다니. 말도 안 돼”
부마? 군주의 남편을 부르는 말일 것이었다. 혜성은 군주의 부마를 뽑는다면 곧 혼례금지가 공표되겠구나 싶었다.
궁으로 들어왔다. 군주의 나인 하나만이 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양반가인 혜성에게도 예전부터 예를 다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군주님.”
갑자기 호칭이 군주로 바뀌자 적응이 안되는 혜성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실제 군주는 뭐하고 있을 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중에 물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혜성이 상궁을 따라 가는데, 엄청난 인파를 데리고 다니는 무리를 만나게 됐다. 그때 그는 오상궁을 불렀다.
“오상궁, 지금이 밤도 아닌데 어찌 군주 보다 앞서 걷는 것이냐!”
궁의 예절은 높은 사람보다 앞서서도 옆에서도 걸을 수 없는 건가! 혜성은 그에게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니 아주 오랜만에 거의 7년만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누군지 알았다.
오래전 자신의 남편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세손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지며 양 볼이 붉어진 혜성이었다. 그런 혜성의 얼굴을 본 세손이 놀라 손을 혜성의 이마에 가져대 보았다.
“왜 이렇게 얼굴이 붉어? 아픈 것이냐? 그렇게 좀 그만 나돌아 다니라고 했지 않느냐?”
자상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말투가 혜성의 한 쪽 귀로 들어왔으면 다른 한 쪽 귀로 나갈 것이지 마음에 쏙 들어 멈추었다.
감정을 휘감는 말 한마디, 처음 느껴보는 따뜻한 손바닥의 촉각에 신경이 곤두서버린 혜성이었다.
한쪽으로 자신의 이마에 손을 가져가는 세손이었다.
“열은 없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얼빵해졌어?’
“네에..?”
오상궁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럴 때 자신을 도와주면 좋겠는데, 세손과의 자리라서 그런지 아무 말도 못했다.
7년전, 그때를 떠올린다. 너무도 어렸던 혜성과, 세손이었다.
“너는 아프면 안 된다 하지 않았느냐. 내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첫사랑과 닮아 있다고. 그래서 내 혈육이지만. 더 마음이 간다.”
“…”
세손의 첫사랑은 누굴까.
그게 설마 자신은 아니겠지 생각하는 혜성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더욱 더 그 사람과 닮아 보인다. 너를 보며 이렇게 자랐겠구나 싶을 텐데, 오늘은 아주 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있는 것 같구나.”
혹시나 세손에게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도 생긴 걸까?
심지어 군주께서는 이런 말을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데.
“만났을까?”
군주는 저잣거리를 걸으며 두 사람을 떠올렸다. 세손과 혜성이었다.
세손이 자신의 귀에 피가 나도록 하던 말이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7년 전, 자신이 만났던 첫사랑에 대해서였다.
“고작 12살 짜리가. 첫사랑을 했습니까.”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 있다고요?”
“아무튼 있다. 사랑에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느냐. 나는 이미 3살에 소경을 뗀 사람이다. 사랑은 늦었다고 볼 수 있는거지.”
“그런 마음으로 백성들이나 더 사랑하고 보살피시지요”
“그러고 있다. 백성중엔 그녀가 있을 테니..”
“어머. 어머. 세손저하께 이를겁니다.”
“그러면 나는 네 부마로 네가 젤 싫어하는 사람을 추천할거다.”
“허. 나참. 어이가 없어서”
“너는 조선의 군주. 나중에는 공주가 될 사람이다. 너무 경고망동하지 마라 인혜야”
“흥. 알겠습니다. 흥흥”
혜성을 처음보자 마자 알았다.
이 사람이구나.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확실했다.
이 사람이구나!
만약 두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면 알아볼까?
아마도 모를까?
운명이라면,
자신을 이렇게 보낸 게 또 운명이라면.
그 운명의 힘이 어디까지 인지 궁금했던 인혜 군주였다.
“오늘은 정말. 더 그 사람 갔구나”
아쉽다는 듯 이마에서 손을 떼려는 때.
평소 조용하던 혜성이었지만 자신의 손을 세손에게 포개었다.
“정말. 열이 나지 않습니까?”
문득 물어오는 그 말투가.
어쩐지 낯설었지만, 또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혜성과 세손은 손을 포갠 채.
서로 말없이 눈을 맞추며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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